작년 12월 쯤 일어난 일이다. 맥북 키보드에 탄산수를 엎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끄고, 물기를 닦아낸 다음 뒤집어서 물기를 말렸다. 하지만 그렇게 내 맥북은 갔다.

SSD에 이상이 있으며, 이 때문에 OS부팅이 되지 않는다. 수리점에서 가지고 있는 정상 SSD를 장착했을 때는 정상적으로 부팅이 되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근처 공인 수리점에 달려가 점검한 결과를 요약하면 이랬다.
그렇게 나는 점검비 44000원을 내고 SSD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점검에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충격이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공인 수리점에서 제시한 SSD의 교체 비용이 (256GB에) 60만원 정도였던 것. 결국 그 자리에서 수리하진 못하고 부팅이 되지 않는 맥북을 가지고 돌아왔다. 포기하고 새 맥북 프로를 구입하면서 쓰고 있었는데, 몇 달 뒤 2014년 맥북이라면 SSD 자가교체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검색해보니 내 것과 같은 맥북으로 SSD를 교체한 이 블로그 포스트를 발견했고,SSD를 자가교체 하기로 마음먹었다.
부품 구입하기
OWC는 맥의 부품을 직접 교체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 전부터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내 맥북에 맞는 SSD를 골라 결제했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480GB SSD의 가격은 $269로, 정품 가격보다 용량은 두 배 가까이 커졌지만 가격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심지어 SSD 뿐 아니라 관련 드라이버와 기존 SSD를 외장 SSD 화 할 수 있는 케이스도 포함한 키트 가격이다. 배송비를 전부 합하니 대략 $294로, 한화로 부가가치세 3만원을 포함해 약 33만원이 결제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6월에는 가격이 더 떨어져서, 480GB 업그레이드 키트가 $224이다. (Pro X2로 이름도 변경되었다)

SSD 업그레이드 키트 장착하기
배송은 상상 이상으로 빨라서, 2월 11일에 주문하고 2월 14일에 수령했다.

이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OWC에서 제공하는 비디오를 보면 그대로 따라할 수 있어서, 처음 뚜껑을 열거나 배터리를 뽑을 때 약간의 자신감만 있으면 크게 문제 없이 교체할 수 있다. 심지어 꺼낸 SSD를 외장 SSD 케이스에 장착하는 영상도 준비되어 있다(물론 나는 원본 SSD가 아예 회생불능이었기 때문에 이 영상을 볼 일은 없었다).
장착한 SSD에 macOS 설치하기
내가 교체를 시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위에서 인용했던 글의 작성자는 평범하게 복구 모드로 부팅한 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하고, 마이그레이션을 사용해 기존 정보를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장착을 시도했을 때는 2019년 2월로, 그 사이에 판매하는 SSD가 살짝 바뀌었다(Aura SSD에서 Aura Pro X로 바뀐 듯 하다). 처음에는 그걸 모른 채 단순히 가격만 조금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바로 SSD를 장착했고, 복구 모드를 켰다.

오랜만에 보는 둥글둥글한 창과 버튼들에 추억에 젖은 것도 잠시, SSD에 운영체제를 설치하려고 할 때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설치할 수 있는 디스크에 새로 장착한 SSD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SSD를 잘못 꽂은 줄 알고 다시 끈 뒤, 분해 후 재조립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기존 SSD가 죽어버린 상황에서 새로 온 SSD마저 정상적으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30만원을 공중으로 날리고 울기? 그러던 와중, 키트에 동봉된 팜플렛 하나를 발견했다.
macOS 10.13 High Sierra or later must be installed on the host computer before installing Aura Pro X SSD. These OS versions include an EFI firmware update for your host computer. Without this update, your new Aura Pro X will not function once installed.
(Aura Pro X SSD를 장착하기 전, 장착하려는 컴퓨터에 반드시 macOS 10.13 High Sierra 혹은 그 이후 버전이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해당하는 버전들은 EFI 펌웨어 업데이트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업데이트를 설치하지 않으면 Aura Pro X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SSD 인식을 위한 펌웨어 문제 때문에 반드시 macOS 10.13 High Sierra 혹은 그 이후의 버전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장난 SSD에 10.14 Mojave 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복구 모드로 켤 때는 Mavericks로 부팅되므로 새로운 SSD가 인식되지 않는듯 했다. 그렇다면 내장된 복구 시스템으로는 SSD에 macOS를 설치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꼭 내장된 복구 시스템을 써야 하나?
macOS는 지금까지 업데이트를 거의 항상 온라인 업데이트로(Mac App Store를 통해) 했었기 때문에 잊고 쉽지만, 사실 USB 드라이브를 통한 설치도 가능하다. 심지어 애플 공식 지원 페이지에 설치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문서도 있다. 단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디스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macOS가 필요하다는 점이다(적어도 공식 문서상으론 그렇다. 윈도우로도 만들 수 있긴 한데, 뭔가 유료 프로그램의 체험판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마침 나에게는 침수 후 SSD 교체를 포기하고 새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던 맥북이 있었고, 여기에서 Mojave 설치 프로그램을 USB 에 담았다.
기적적이게도(?) macOS Mojave 설치 프로그램에서는 새로 구입한 SSD가 정상적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설치 과정은 그냥 평범하게 OS 초기화 후 새로 설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처음 참고했던 블로그에서는 처음 SSD를 설치하면 외장 볼륨으로 인식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dmg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설치해야 한다고 했으나, 내가 설치할 때는 Mojave 설치 프로그램에서 SSD를 처음부터 내장 물리적 볼륨으로 인식했다.
설치한 이후의 문제점
SSD를 교체한 후 나는 맥북에 외장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연결한 뒤 내장 모니터를 덮어놓고 데스크탑 컴퓨터의 본체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교체 이후 두 번 정도 잠금 상태에서 마우스를 흔들어 깨우려고 할 때 켜지지 않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해 시스템이 종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컴퓨터가 처음부터 다시 부팅되는 문제가 있었다. 네 달 가까이 사용하면서 두 번 발생했고, 지금은 또 일어나지 않는 증상이며, 상세하게 알아보지 않아서 이게 외장 SSD 때문인지는 불명이다. 한번 더 발생하면 사설 수리 업체에 방문하여 한번 점검을 받아 볼 예정이긴 하다.
그 외에는 사용하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진 않았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문서 작업, 웹 브라우징, 코딩 등의 범위 안에서는 모두 기본 SSD와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SSD의 아이콘 모양과 이름 때문에 설치 프로그램 등에서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문제도 전혀 없었다.
2020-07-14. 몇달 전 나는 이 맥북을 결국 SSD를 뺀 채 부품용으로 팔았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해 시스템이 종료되었습니다” 라는 버그가 상당히 지속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이러한 증상은 사설 SSD를 장착한 맥에서 거의 항상 발생하는 이슈이고, 이를 위해선 hibernation 관련한 무언가를 고쳐줘야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팔고, 2017 맥북(12인치) 를 사서 두 대의 맥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