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지금까지 헤드폰이 아닌 블루투스 이어폰 Powerbeats3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헤드폰의 필요성을 느껴 알아보다가 소니의 최근 헤드폰이 노이즈캔슬링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구매를 결심했다. 저음을 일단 세게 틀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MDR-XB950B1와 WH-1000XM3 사이에서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결과적으로 WH-1000XM3을 집었다. 1월 말에 사서 대충 3주정도 들었고, 쓰면서 느낀 점들을 써보고자 한다.
장점들.
- 노이즈 캔슬링 성능. 수많은 리뷰들에서 캔슬링이 대단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르게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차가 많은 도로에서 헤드폰 한쪽을 슬쩍 들면, 원래 조용했던 방에서 내 한쪽 귀에 인위적으로 차도 소리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 기본 제공되는 케이스. Powerbeats3에도 케이스가 있긴 했지만 흐느적거리는 실리콘 케이스였기 때문에 별로 보호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반면 WH-1000XM3는 유선 케이블이나 충전 케이블 등을 넣을 공간까지 고려한 케이스가 제공되어 매우 편했다.
- ClearBass. 소니 헤드폰 앱을 설치한 후 설정가능한 이퀄라이저 중 ClearBass 옵션을 켜면 XB시리즈 저리가라 할 정도의 강력한 베이스가 나온다. XB950B1이 노이즈캔슬링이 좀 별로여도 저음 때문에 사야 하나 하고 고민했었는데, 이 옵션을 켜서 청음해 본 뒤 과감하게 1000XM3을 골랐다.
체감 베이스 강도 비교: XB950B1+ ClearBass Max> 1000XM3 + ClearBass Max > XB950B1 + ClearBass OFF - USB-C. 어떤 사람에겐 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맥북과 함께 USB-C로 주변 장비들이 바뀌고 있는 나에게 이건 소소하면서도 매우 편리한 요소였다. 대충 아무거나 집어서 충전 케이블을 꽂으면 충전할 수 있으니까. 아직 주변의 기기들이 micro-USB를 사용한다면 단점이 될 수 있겠다.
단점들.
- 추우면 오작동하는 터치 컨트롤. 겨울에 사서 사자마자 바로 체감했는데, 정말 짜증난다. 차라리 동작이 안 되고 가만히 있으면 상관이라도 없는데, 오동작이 심한 경우에는 갑자기 음악이 끊기며 시리를 부른다. 주변에서는 손바닥을 올려 주변 소리를 듣는 기능이 갑자기 활성화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핫팩을 올렸을 때 손바닥을 올린 것 같은 효과가 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일반적인 정전식 터치가 아닌 체온을 이용한 터치를 채용한 것 같은데… 아무튼 별로다. 그래도 아이폰처럼 춥다고 갑자기 꺼지지는 않는게 다행인가?
- 멀티 페어링 불가.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블루투스 헤드폰이라는 녀석이 단일페어링만 지원하는지 모르겠다. Powerbeats3도 단일 페어링이었지만 다른 애플 기기에서 연결을 시도하면 자동으로 이전 연결이 끊기면서 넘어가서 큰 불편 없이 사용했었는데, 이건 그것도 안 된다. 새 기기에 연결하려면 일단 끄고, 길게 눌러 페어링 모드에 진입하면서 켠 다음 새로 연결할 기기의 블루투스 목록에서 직접 선택해 줘야 한다. 한 기기만 줄창 쓴다면 상관 없겠지만, 여러 기기를 돌려 쓰는 사람에게는 매번 페어링을 새로 해줘야 하는 것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 형편없는 유선 지원. 유선이 지원된다는 점을 이 헤드폰을 사면서 꽤나 눈여겨봤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3–1. 블루투스 헤드폰이 유선도 지원하는 것은 일단 좋다. 무선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응급하게 헤드폰이 필요할 때 사용하기에 정말 좋다. 케이블도 들어있고, 유선에서도 전원을 켜면 노이즈캔슬링이 된다. 여기까지만 좋다.
3–2. 유선에서는 장점에서 이야기 한 CleasBass를 포함한, 이퀄라이저가 작동되지 않는다. 전원을 켜도 노이즈캔슬링 ‘만’ 된다. 진심인가? 전원을 껐을때는 이해라도 하겠는데, 전원을 켜도 안 된다는건 솔직히 소프트웨어를 대충 만들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앱을 통해 헤드폰 시스템 업데이트를 지원하던데, 제발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3–3. 기본 동봉으로 항공기용 어댑터를 제공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유선 케이블이 3극이다. 유선으로 연결하면 헤드폰에 달려있는 마이크는 무선 전용이라 동작도 안 하는데, 4극 케이블을 넣어서 중간에 버튼 컨트롤러 겸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는 거였나? 3만원짜리 이어폰에도 들어가는 4극 마이크/버튼 케이블을 정가 40만원이 넘는 헤드폰에 안 넣어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고속충전 지원하는 아이폰에 여전히 5W짜리 충전기를 동봉해 판매하는 애플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 진동이 있는 환경에서 소리가 좌우로 흔들림. 표현이 굉장히 모호한데, 굳이 더 적어보자면 좌우 밸런스 조절 바를 좌우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 구체적으로 언제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철과 같이 빠른 진동이 있는 교통수단에서 주로 발생하는 문제 같다. 어쩌면 ANC의 방식 상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도 생각되지만, 이 부분만큼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부러 장점보다 단점을 좀 더 상세하게 적었다. 장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리뷰에서 다 등장하는 것들이라 굳이 내가 한번 더 반복해서 적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단점에서 적은 2번과 3–2번에 관해서는 국내 커뮤니티에선 거의 찾기 힘들고, 외국에서도 레딧의 일부 스레드에서 겨우 한두번 언급되는 정도였기 때문에, 여기서 특히 더 강조했다.
총평하자면 이 헤드폰의 가장 차별화된 특성인 노이즈캔슬링에 대해서는 대단한 성능을 보이고 있지만, 4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헤드폰으로써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고 하겠다. 동봉 케이블은 이미 판매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소프트웨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헤드폰 업데이트를 통해서 꼭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